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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바람, 그리고 나 : 충주호 게으른악어 에서 휴식

by 경운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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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충주호로의 여정 | 악어봉 정상 | 게으른악어 카페 | 여행의 마무리

충주호로의 여정

그날, 바람이 몹시 불었다. 충주호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나무들은 고개를 떨구었고, 벚꽃잎은 허공을 맴돌다가 조용히 차창을 두드렸다. 나는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라디오는 꺼둔 지 오래였고,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길 위에서, 나는 스스로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벚꽃

 

충주호는 봄의 한가운데서도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듯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걷고 있었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흩날리는 꽃잎과 조용한 바람,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벚꽃은 충주호 주변의 일부 길목에서만 보였다. 악어봉에 올랐을 땐 발밑으로 호수가 펼쳐졌다. 물빛은 잔잔했고, 산 능선은 연분홍빛을 품고 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한 고요함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caiman_mountain
caiman_mountain top

악어봉 정상

나 자신에게도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몸이 먼저 말해주는 듯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 그런 시간이 정말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하게 된 하루였다. 마음속엔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무언가가 있었고, 그게 비로소 숨을 돌리는 듯했다。

등반하는중

내가 이 여행을 계획한 건 충동에 가까웠다. 평소 같았다면 수많은 이유로 미뤘을 것이다. 일, 사람, 약속, 날씨. 하지만 그날 아침, 나는 조용히 짐을 싸고 차에 올랐다. 충주호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누구에게 추천을 받은 것도, 우연히 본 사진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가보고 싶었던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악어봉의 다양한 경치

악어봉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숨이 찼다. 숨이 찬 것이 어쩐지 반가웠다. 평소보다 많이 걷지도, 많이 오르지도 않았는데, 몸은 땀을 조금 흘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이 곳을 원해왔던 것일까. 정상을 내려오는 길엔 몸이 가벼웠다.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게으른악어 카페

산을 내려와 도착한 곳은 ‘게으른악어’라는 이름의 조용한 찻집이었다. 큰 창이 있고,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오래된 향기 같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 창밖에도 벚꽃이 피어 있었고, 꽃잎이 바람 따라 흩날리는 풍경은 마치 한 편의 그림 같았다.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바움쿠헨을 주문했다. 나무결처럼 생긴 그 빵을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지금 이 순간이 나를 위로하고 있구나。누군가의 말도, 긴 조언도 아니고, 바로 이 작은 조각이。

게으른악어 카페 주변
게으른악어 간판
바움

바깥의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고, 벚꽃은 충주호 길목 어딘가에서만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벚꽃을 떠올리다가,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잠깐이었지만,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낮은 대화, 그리고 커피 향이 어우러져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카페에서 한잠자다

여행의 마무리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이었다.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 혼자라는 시간의 여백,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작은 감정들. 충주호는 그런 공간이었다. 말이 없고, 소란스럽지 않으며, 대신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

돌아오는 길엔 해가 기울고 있었다. 햇빛은 붉게 물들었고, 도로 위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나는 전과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떨쳐낸 것도 아니고, 거창한 변화를 이룬 것도 아니지만, 마음 한켠이 가벼워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냐고. 나는 이제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혼자니까, 나와 함께할 수 있었다고。" 그 날 충주호의 벚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게 꼭 필요한 말을 건넸다. 조용하게, 아주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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